103세, 그러나 나는 농사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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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낙산사복지재단 댓글 0건 조회 4,024회 작성일 12-03-15 08:51본문
103세, 그러나 나는 농사짓는다['나는 100세다']
① 파주시 황완 옹
푸른 임진강 보이는 마을서 고구마·배추 등 직접 경작… 30년전 담배 끊고 술 안마셔 돋보기도 없이 명함 읽어내… "대통령도 부럽지 않아"
누구나 건강한 노년을 꿈꾼다. 100세를 넘기고도 밝고 건강하게 사는 어르신들을 만나면 어떻게 살아왔는지 마냥 궁금해진다. 이들의 백년간 굽이쳐 흘러온 인생과 여전히 변치 않는 삶의 자세는 어떠할까. 만수무강의 해답, 여기 있지 않을까?
황완(103·파주 문산) 옹은 직접 전화를 받았다. "난 집 아니면 경로당에 있어. 아무 때나 와."
푸른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임진리 마을, 비슷하게 생긴 시골 한옥들 사이에 그의 집이 있었다. 그는 마침 연탄을 막 갈고 안마당에 나서던 참이었다. 지팡이를 잡은 손에는 채 닦지 않은 연탄 가루가 배어 있다. "어서 와." 백년의 세월이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커피 즐기는 장수노인
연탄불이 노곤하게 지펴진 안방에는 대파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는 손님 커피를 끓이면서 커피이야기를 꺼냈다.
"삼십 년 전부터 커피를 하루에 꼭 석 잔은 먹어요. 아침 먹고 한잔, 점심 먹고 한 잔, 저녁 먹고 한 잔, 어떨 땐 밤에 잠이 안 와서 한 잔 먹고 있다가 12시 넘어서 자요. 노인정 가면 나부텀 대접하지. 노인 오셨다고 차 한 잔 드시라고. 이 사람 저 사람 주는 거 안 먹을 수도 없고. 사양 않고 주는 대로 먹으면 10잔도 더 먹지."
'커피 즐기는 장수노인' 황 옹의 식사는 단출하다. 전기밥솥의 밥, 전기냄비의 찌개나 국, 자식들이 해다 준 밑반찬으로 식사한다. 하루 두 끼만 먹고, 따로 약을 먹는 것은 없다. 한번씩 소화가 되지 않으면 아들이 챙겨준 한방 소화제를 먹는 게 전부다. 담배는 30년 전에 끊었고 술은 원래부터 안 했다고 했다. 돋보기 없이 명함을 읽고,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오래 전 일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모습에서 잠시 103세란 나이는 잊혔다.
그의 장수비결을 찾는다면, 집 안이 아닌 집 밖에 있는 듯했다.
집 뒤쪽에 이웃주민들이 공동으로 경작하는 텃밭이 있는데, 그는 집 뒷문으로 나가 직접 텃밭을 가꾼 지 삼십 해가 넘었다. 자신의 밭은 임진강 건너에 있어 그곳까지 가지 못한다. 텃밭에서 하루종일 열무·고구마·배추 등을 직접 가꾸고 틈나는 대로 노인정에 들른다. 지난해는 배추를 500여 포기 수확하기도 했다.
"(예전부터) 농사일 붙잡으면 남한테 빠지지 않고 일했어요. 내 거나 남의 거나 꾀 안 쓰고 일하니까 피란 가서도 일 잘한다고 서로 (나를) 안 놓으려고 해. 농사짓는 거도 재주가 있어야지. 몇십 년 농사 지어도 굼뜬 사람은 그렇게 못해. (나처럼) 밭고랑에서 살다 간 사람한테 못 당하지. 밭을 남들은 건정건정 파서 하는데, 나는 폭폭 파서 하면 김(잡초)이 안 나요. 내가 맨든 밭은 평안하지. 물꼬도 내만큼 하는 사람이 없어. 비닐봉지 판판하게 해서 비가 어느 정도 와도 물이 넘쳐서 내려가니까 안 터지지…."
파주 장단이 고향인 그는 어려서부터 밭일·농사일이 재미있는 천상 농사꾼이었다. 어린 시절, 애주가였던 삼촌이 소를 논 가운데 버려두고 주막으로 내뺐을 때도, 어린 그가 평소에 보아온 대로 소를 몰았던 기억은 지금도 신이 난다. 또 고향의 '장단무'는 연하고 맛이 좋아 마포 장에 풀어놓으면 제일 먼저 팔리는 인기품목이었다.
"장단서 그렇게 했어요. 겨를 갈아서, 나무 액체 갈아 엎어. 그게 거름이 되어서 무를 심그면 너무 연했지. 뱃사람들이 재걱재걱 깎아서 한 솥 디다 놓으면 기가 먹히게 맛있게 먹지. 지금도 내 손으로 도시랑(도랑) 파가지고 겨하고 풀하고 깎아다가 덮어요. 내가 그렇게 키워서 열 개씩 묶어서 주니까 사람들이 사 먹는 거보다 맛있대."
◇농사지은 것 나눠주는 인심 좋은 할아버지
이웃들은 그의 장수비결을 '인심이 좋고 선하셔서 장수하신다'고 말한다. 앞집에 살았던 서명원(43·문산)씨는 "초등학교 때 할아버지가 연탄차에서 집까지 연탄 1장 나르는데 1원씩 주셨다. 친구들과 몇백 장씩 나르면서 돈을 잘 벌었다"며 "그 때도 인심이 참 좋으셨다"고 말한다. 지금도 직접 재배한 고구마·배추·열무 등을 노인정과 이웃에 나눠주고 '참 맛있다'는 말을 듣는 게 황 옹의 낙이다. "먼저 베풀면 그쪽에서도 알아주지. 내가 꽃을 좋아해서 저 꽃(조화)을 문산 장에서 하나 샀어. 근데 그가 내 고구마를 많이 얻어먹었지. 그래서 저 옆의 꽃도 그냥 준 거야. 서로서로 그런 거야. 내가 꽃을 참 좋아해. 사오십대 때 다방에 가면 꽃을 꺾어다 주고 그랬지. 다방에 출입 많이 했지. 그래도 할머니는 신경 쓰지 않았어."
몇 해 전 사별한 부인에 대한 마음은 애틋하다. "난봉도 좀 피고, 돈도 많이 썼어. 내가 그런 사죄를 산소에 가면 해. 내가 죄 많이 지은 사람이야. 용서하라고. 자식들하고 갈 때도 마누라 거는 내가 챙기지. 우리 마누라는 매일 아침 커피를 꼭 한 잔 밖에 안 먹어요. 누가 곡을 해도 안 먹고. 그래서 내가 산소에 가면 꼭 마누라 한 잔 부어주고 나도 한 잔 먹고 오지."
그는 '대통령이 부럽지 않다'고 말한다. 전화로 자주 문안인사 드리는 아들들과 밑반찬 해오는 딸과 며느리, 어느덧 훌쩍 커버린 손녀·손자들이 낳은 올망졸망한 증손주들까지 그의 뒤로 따르는 가족들이 그득하다. 마침 안방 이부자리 옆에는 햇볕에 바짝 말려서 거둔 이불이 개켜져 있다. 지난주 아들과 며느리가 다녀간 흔적이다. 그는 여러 번 이불을 쳐다보며 "이번 주에 와서 새 이불 호청으로 꿰매줄 거야. 난 아무도 부럽지 않아. 아들딸 낳아서 덕 보고 사는데 뭐. 우리 자식들이 효자"라고 말한다.
자식들의 눈과 손이 훑고 간 안방은 더없이 정갈하고, 그 속에 백발 노인이 웃고 있다.
① 파주시 황완 옹
푸른 임진강 보이는 마을서 고구마·배추 등 직접 경작… 30년전 담배 끊고 술 안마셔 돋보기도 없이 명함 읽어내… "대통령도 부럽지 않아"
누구나 건강한 노년을 꿈꾼다. 100세를 넘기고도 밝고 건강하게 사는 어르신들을 만나면 어떻게 살아왔는지 마냥 궁금해진다. 이들의 백년간 굽이쳐 흘러온 인생과 여전히 변치 않는 삶의 자세는 어떠할까. 만수무강의 해답, 여기 있지 않을까?
황완(103·파주 문산) 옹은 직접 전화를 받았다. "난 집 아니면 경로당에 있어. 아무 때나 와."
↑ [조선일보]103세 농부 황완 옹은 지금도 자신의 텃밭에서 고구마·배추·열무 등을 직접 농사짓는다. 하루 두 끼 식사하지만 약이라곤 어쩌다 소화제 먹는 것 외에는 전혀 없다고 했다. /서지혜 리포터
◇커피 즐기는 장수노인
연탄불이 노곤하게 지펴진 안방에는 대파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는 손님 커피를 끓이면서 커피이야기를 꺼냈다.
"삼십 년 전부터 커피를 하루에 꼭 석 잔은 먹어요. 아침 먹고 한잔, 점심 먹고 한 잔, 저녁 먹고 한 잔, 어떨 땐 밤에 잠이 안 와서 한 잔 먹고 있다가 12시 넘어서 자요. 노인정 가면 나부텀 대접하지. 노인 오셨다고 차 한 잔 드시라고. 이 사람 저 사람 주는 거 안 먹을 수도 없고. 사양 않고 주는 대로 먹으면 10잔도 더 먹지."
'커피 즐기는 장수노인' 황 옹의 식사는 단출하다. 전기밥솥의 밥, 전기냄비의 찌개나 국, 자식들이 해다 준 밑반찬으로 식사한다. 하루 두 끼만 먹고, 따로 약을 먹는 것은 없다. 한번씩 소화가 되지 않으면 아들이 챙겨준 한방 소화제를 먹는 게 전부다. 담배는 30년 전에 끊었고 술은 원래부터 안 했다고 했다. 돋보기 없이 명함을 읽고,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오래 전 일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모습에서 잠시 103세란 나이는 잊혔다.
그의 장수비결을 찾는다면, 집 안이 아닌 집 밖에 있는 듯했다.
집 뒤쪽에 이웃주민들이 공동으로 경작하는 텃밭이 있는데, 그는 집 뒷문으로 나가 직접 텃밭을 가꾼 지 삼십 해가 넘었다. 자신의 밭은 임진강 건너에 있어 그곳까지 가지 못한다. 텃밭에서 하루종일 열무·고구마·배추 등을 직접 가꾸고 틈나는 대로 노인정에 들른다. 지난해는 배추를 500여 포기 수확하기도 했다.
"(예전부터) 농사일 붙잡으면 남한테 빠지지 않고 일했어요. 내 거나 남의 거나 꾀 안 쓰고 일하니까 피란 가서도 일 잘한다고 서로 (나를) 안 놓으려고 해. 농사짓는 거도 재주가 있어야지. 몇십 년 농사 지어도 굼뜬 사람은 그렇게 못해. (나처럼) 밭고랑에서 살다 간 사람한테 못 당하지. 밭을 남들은 건정건정 파서 하는데, 나는 폭폭 파서 하면 김(잡초)이 안 나요. 내가 맨든 밭은 평안하지. 물꼬도 내만큼 하는 사람이 없어. 비닐봉지 판판하게 해서 비가 어느 정도 와도 물이 넘쳐서 내려가니까 안 터지지…."
파주 장단이 고향인 그는 어려서부터 밭일·농사일이 재미있는 천상 농사꾼이었다. 어린 시절, 애주가였던 삼촌이 소를 논 가운데 버려두고 주막으로 내뺐을 때도, 어린 그가 평소에 보아온 대로 소를 몰았던 기억은 지금도 신이 난다. 또 고향의 '장단무'는 연하고 맛이 좋아 마포 장에 풀어놓으면 제일 먼저 팔리는 인기품목이었다.
"장단서 그렇게 했어요. 겨를 갈아서, 나무 액체 갈아 엎어. 그게 거름이 되어서 무를 심그면 너무 연했지. 뱃사람들이 재걱재걱 깎아서 한 솥 디다 놓으면 기가 먹히게 맛있게 먹지. 지금도 내 손으로 도시랑(도랑) 파가지고 겨하고 풀하고 깎아다가 덮어요. 내가 그렇게 키워서 열 개씩 묶어서 주니까 사람들이 사 먹는 거보다 맛있대."
◇농사지은 것 나눠주는 인심 좋은 할아버지
이웃들은 그의 장수비결을 '인심이 좋고 선하셔서 장수하신다'고 말한다. 앞집에 살았던 서명원(43·문산)씨는 "초등학교 때 할아버지가 연탄차에서 집까지 연탄 1장 나르는데 1원씩 주셨다. 친구들과 몇백 장씩 나르면서 돈을 잘 벌었다"며 "그 때도 인심이 참 좋으셨다"고 말한다. 지금도 직접 재배한 고구마·배추·열무 등을 노인정과 이웃에 나눠주고 '참 맛있다'는 말을 듣는 게 황 옹의 낙이다. "먼저 베풀면 그쪽에서도 알아주지. 내가 꽃을 좋아해서 저 꽃(조화)을 문산 장에서 하나 샀어. 근데 그가 내 고구마를 많이 얻어먹었지. 그래서 저 옆의 꽃도 그냥 준 거야. 서로서로 그런 거야. 내가 꽃을 참 좋아해. 사오십대 때 다방에 가면 꽃을 꺾어다 주고 그랬지. 다방에 출입 많이 했지. 그래도 할머니는 신경 쓰지 않았어."
몇 해 전 사별한 부인에 대한 마음은 애틋하다. "난봉도 좀 피고, 돈도 많이 썼어. 내가 그런 사죄를 산소에 가면 해. 내가 죄 많이 지은 사람이야. 용서하라고. 자식들하고 갈 때도 마누라 거는 내가 챙기지. 우리 마누라는 매일 아침 커피를 꼭 한 잔 밖에 안 먹어요. 누가 곡을 해도 안 먹고. 그래서 내가 산소에 가면 꼭 마누라 한 잔 부어주고 나도 한 잔 먹고 오지."
그는 '대통령이 부럽지 않다'고 말한다. 전화로 자주 문안인사 드리는 아들들과 밑반찬 해오는 딸과 며느리, 어느덧 훌쩍 커버린 손녀·손자들이 낳은 올망졸망한 증손주들까지 그의 뒤로 따르는 가족들이 그득하다. 마침 안방 이부자리 옆에는 햇볕에 바짝 말려서 거둔 이불이 개켜져 있다. 지난주 아들과 며느리가 다녀간 흔적이다. 그는 여러 번 이불을 쳐다보며 "이번 주에 와서 새 이불 호청으로 꿰매줄 거야. 난 아무도 부럽지 않아. 아들딸 낳아서 덕 보고 사는데 뭐. 우리 자식들이 효자"라고 말한다.
자식들의 눈과 손이 훑고 간 안방은 더없이 정갈하고, 그 속에 백발 노인이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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