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자본, 정신병 주고 약 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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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금선스님 댓글 0건 조회 4,035회 작성일 12-01-02 05:03본문
<뉴저지, 미국>, 1966-엘리엇 어르위트
50년 전 등장한 신경이완제는 의학적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은데도 미국 정신의학계에서 널리 애용되고 있다. <DSM>가 임상의 사이에 절대적인 진단 지침서로 각광받으며 전세계적으로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확한 인식을 퍼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시에 설립된 의료영상기업 ‘세어스캔’(CereScan)은 뇌영상으로 정신질환을 진단하는 업체이다. 뇌영상을 통해 정신장애를 어떻게 진단하는지 <미국공영방송>(PBS)(1)이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자세히 소개했다. 11살짜리 남자아이가 엄마·아빠 사이에 앉아 얌전히 자기공명영상(MRI)(2) 뇌 촬영 결과를 기다린다. 한 여성 임상사회복지사가 소년에게 떨리는지 묻는다. “아니요.” 소년이 대답한다. 대답을 들은 복지사가 가족에게 뇌영상을 꺼내놓는다. “자, 보세요. 여기는 빨간색, 여기는 주황색인 게 보이죠. 원래는 초록색, 파란색을 띠어야 정상이랍니다.” 요컨대 색에 따라 어느 것은 우울증, 어느 것은 양극성장애(조울증) 또는 불안과 관련한 각종 정신장애를 뜻한다는 설명이다.
정신장애 진단 왜 폭증하나 했더니
오늘날 미국 사회는 이상 증상에 점차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세어스캔도 이런 사회적 요구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 업체에 따르면, 18~54살 미국인 가운데 ‘불안장애와 관련한 병리적 이상 및 장애’로 고통받는 사람은 7명 중 1명, 다시 말해 모두 900만 명에 달한다.(3) 미래 유망 시장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세어스캔은 앞으로 미국 내에 의료영상센터 20곳을 새로 개설할 계획이다.
일반인에게 기대되는 규범 행동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된 바는 없다. 그럼에도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은 ‘주의력결핍’ 등 병리학적 장애나 이상 증상에 대한 진단 기준을 자세히 나열·분류해놓고 있다. <DSM>은 미국 임상의들 사이에 절대적 진단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른 나라의 활용 사례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그 결과 <DSM>에 따라 ‘병리적 이상’을 진단받는 아이들의 연령대가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아래 기사 참조). 한 예로 미국에서는 2000년대 초 이후 양극성장애 진단을 받은 어린이가 100만 명에 이르렀다. 1992년 1만6천 명에 불과하던 6~22살 자폐 환자도 2008년 29만3천 명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2000년부터 집계에 들어간 3~6살 어린이 환자까지 모두 합하면 이 수치는 무려 33만8천 명에 이를 것이다.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중증 정신장애를 이유로 연방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수혜자도 매일 1100명(성인 850명, 어린이 250명)씩 늘어났다. 정신장애자를 걸러내는 사회적 그물망이 점차 촘촘해지는 셈이다. 문제는 성인 임상시험 결과, 약물치료가 장기적으로 반드시 분명한 효능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초기 몇 주간은 긍정적 치료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일반적으로 위약을 복용한 경우에도 초기에는 긍정적 반응이 나타난다). 하지만 좀더 장기적 차원에서는 복구하기 힘든 뇌손상이나 후천적 이상운동증(Dyskinesia)(4) 등을 일으킨다.
본격적으로 정신이상에 대한 약물치료가 시작된 것은 1950년대부터다. 프랑스 의사 앙리 라보리의 연구를 토대로 말라리아·결핵·수면병에 약물요법을 시행한 것이 단초가 됐다. 라보리 박사는 프로메타진 투여가 ‘행복감을 동반한 편안한 정신상태’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51년, 그는 이런 상태를 ‘약에 의한 전두엽백질절제술’(Medicinal Lobotomy)에 비유했다. 1949년 노벨 의학·생리학상을 받은 포르투갈 신경학자 에가스 모니스가 창안한 ‘전두엽백질절제술’(Lobotomy)(5)에 빗대어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전두엽백질절제술에 이어, 최초의 신경이완제(훗날 ‘소라진’(Thorazine)으로 불림) 역시 순식간에 여러 정신병원으로 확산됐다. 심지어 대서양 너머로까지 널리 전파됐다. 이를 기점으로 정신질환이 뇌의 화학적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인식이 서서히 싹텄다. 언론매체도 대중을 상대로 리튬이나 ‘프로작’(Prozac)(1988년 시판), ‘졸로프트’(Zoloft), ‘자이프렉사’(Zyprexa) 등 여러 의약품이 지닌 ‘기적’ 효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신경이완제가 등장하면서 정신과 전문의에 이어 의무실 직원, 임상사회복지사까지 전에 없던 폭넓은 약처방권을 누리게 됐다. 반면 심리치료나 운동, 영양 개선, 사회성 향상 등 다른 치료법은 등한시됐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약물치료가 더욱 증가했다. <DSM>이 진단 기준으로 활용되면서 정신질환의 종류도 한층 세분화되고 늘어났다. 의료 당국의 축복 속에 약물치료가 급증했다.
화학적 치료 올인, 사회적 치료 외면
제약사가 우발적 정신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단지 이것뿐이었다. “당뇨병 환자에게 인슐린이 필요하듯, 여러분에게도 약이 필요하다.” 지난 몇 년간 제약업계의 충직한 홍보원 노릇을 하며 두둑이 배를 채워온 대니얼 카알랏 박사가 제약산업의 영향력을 비난했다.(6) “우리는 내방자에게 본인의 뇌가 화학적으로 불균형한 상태라고 설명한다. 환자 자신이 진짜 아프다고 믿게 만들려면 의학적으로 신빙성 있는 설명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설명이 진실인지는 아직 확실히 증명된 바가 없다.”(7)
여러 추적연구(제약회사가 실시한 연구는 아니다)에 따르면, 신경이완제의 효과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약화된다. 대개는 좀더 강도 높은 발작이 다시 찾아온다. 심지어 위약치료군보다 훨씬 더 심하게 병세가 악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임상의는 투약량이 너무 적거나 치료법이 적절치 않았나 보다며 오히려 투약량을 늘리거나 치료 강도를 높일 뿐이다. 결국 병세는 더욱 악화되고 장애도 한층 깊어진다. 오늘날 미국에서 이런 악순환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이 수백만 명에 달한다. 1951년 라보리 박사가 ‘약에 의한 전두엽백질절제술’이라고 표현했듯이, 때로는 진짜 ‘전두엽백질절제술’과 유사한 악순환이 빚어진다.
아프다고 믿게 만들라
이런 불편한 진실 앞에 제약회사와 연구원들은 종종 임상실험 과정과 결과를 은폐하거나, 심지어 일부 내용을 삭제해 왜곡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한 예로 미국 텍사스대학 연구팀은 그런 식으로 청소년 의약품 ‘팍실’(Paxil)의 임상실험 결과를 위조해 발표했다. 임상실험에 참여했던 환자의 자살률을 높인다는 사실을 쏙 빼버린 것이다. 의약계는 이 약이 청소년 환자에게 내약성이 우수하다고 치켜세우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그런데 이 약을 개발한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이 과거 한 내부 문건에서 이 약이 위약보다 더 효능이 뛰어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했음이 밝혀졌다. 결국 업체는 허위광고 혐의로 법원에 제소됐다. 하지만 업체는 재판 대신 손해배상 쪽을 택했다. 재판으로 이미지가 실추돼 판매수익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판단이었다.(8) 이는 제약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행이다. 이 점에서 제약업계는 담배산업과도 많이 닮아 있다.
일부 학자들은 신경이완제가 거의 효능이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심지어 이를 복용한 환자의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하지만 그들의 의견은 묵살됐다.(9) 제약업계의 재정적 지원에 대대적으로 의존하는 각 대학의 정신의학과는 일반적으로 심각한 이익갈등에 노출돼 있다. 감히 의약품이나 제약사의 이미지를 실추하는 발언을 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2000~2007년 미국 에모리대학 의학대학원 정신의학과 학과장은 수백여 차례에 걸쳐 의약품 홍보 성격의 강연에 참가한 대가로 여러 제약사로부터 280만 달러 이상의 자문료를 받아 챙겼다(더욱이 제대로 소득신고도 하지 않았다). 미국 국립정신보건연구소(NIMH)의 전 소장도 2000~2008년 ‘기분안정제’(Mood Stabilizer·양극성 장애를 조절하기 위한 약으로, 신경안정제와는 다르다)를 홍보해준 대가로 글락소스미스클라인에서 130만 달러를 받았다. 특히 그는 당시 <공영라디오방송>(NPR)의 한 인기 프로그램 진행자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관행에 대해 질문을 받은 그는 <뉴욕타임스>에 “(이 바닥에서는) 누구나 다 그렇게 한다”고 대답했다.(10)
효과 적거나 되레 부작용 일으켜
제약회사에 이어 약처방권을 지닌 수많은 의료계 종사자까지 가세해 향정신성 의약품과 그 밖의 신경이완제 같은 약품의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좀더 다양한 의약품을 더 많이 장기간 복용하도록 부채질하는 것이다. 한 예로 ‘노바티스’는 2000~200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 없이 양극성 장애와 신경성 통증 치료에 대해서도 항간질제 ‘트리렙탈’(Trileptal)을 불법으로 판촉했다가 4억2250만 달러에 달하는 벌금을 물었다. 오늘날 의료계에는 의약품 홍보를 위한 강연이 판을 친다. 제약사는 평소 홍보할 약을 많이 처방한 의사에게 두둑이 돈을 챙겨주고 강연자로 나서게 한다. 수많은 동료 의사들에게도 돈을 주어 청중석을 채우게 한다. 문제는 여기에 드는 천문학적 수준의 마케팅 비용이 최종적으로 의약품 가격에 반영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전부 환자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의사들의 공모, 약에 저는 두뇌
그렇다면 대체 정상과 질병의 경계는 어떻게 그어지는 것일까? 사실 정신질환의 범주를 결정하는 과정에는 현 의료 시스템의 병폐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오늘날 의료 시스템은 온갖 종류의 ‘장애’를 만들어내며, 환자들이 의약품을 과다하게 소비하거나, 의사들이 과잉 진료를 하도록 부채질한다. 게다가 환자가 자기에게 적합한 치료를 받기 더 힘들게 하고 -특히 ‘행위별 수가제’(FFS·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마다 그 횟수에 따라 진료비를 지급하는 제도)가 운용되는 경우 어떻게든 ‘진료 건수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므로- 쓸데없는 진단 검사나 무분별한 약 처방을 부추긴다. 그런데 오늘날 오랜 추적연구의 결과가 하나둘 쌓이면서, 정신분열을 포함한 정신질환을 약물로 다스리는 것이 다른 치료법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물론 드물기는 하나, 일부 예외적인 경우 단기간 약물치료가 더 효과적인 경우는 있다).(11) 결국 약물치료보다는 운동·대인관계·일 등이 정신적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더 편안히 해준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거나, 가족 혹은 공동체에서 따돌림을 받을 때 더 자주 발생한다. 1970~90년대 세계보건기구(WHO)가 전세계의 각 문화를 대상으로 정신분열증과 우울증에 대해 연구한 결과만 봐도, 약물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가 중·장기적으로는 전반적으로 건강상태가 더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12)
그런데도 오늘날 신경이완제가 제약사의 매출을 올려주거나 배를 불리는 데 널리 활용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의약 부문은 지난 50년간 수익성 높은 산업 중 하나였다. 법률체계도 제약산업에 한없이 관대하다. 의료개혁안을 둘러싼 논의가 한참 진행되던 2009년, 보험사·제약사·의료서비스업계 등은 자신의 이권 수호를 위해 법률 입안자들에게 무려 5억4400만 달러에 달하는 로비자금을 쏟아부었다. 2009년 미국의 정신보건 부문 의료예산은 1700억 달러로, 최대 의료예산 항목을 차지하고 있다. 2015년에는 무려 2800억 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13) 아이러니한 사실은, 정신장애 약물치료가 급증하는 현 상황이 무색하게도, 수십만 명에 달하는 환자들이 여전히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전체 인구의 16%에 달하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시민(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개혁은 2014년에나 실행될 예정이다)과 교정기관에 갇힌 수많은 수감자가 대표적인 예다. 감금 생활과 투옥 환경이 환자의 병세를 더 악화시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수감자는 무려 5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교정기관은 이런 문제에 수수방관할 뿐이다. 그 결과 수감자들은 자유의 몸이 되고 나면 치료를 이유로 다시 약물에 손을 대거나, 심지어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만다.
글 / 올리비에 아펙스 Olivier Appaix 경제학자
의료 및 후진국 개발 전문 경제학자.
번역 / 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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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 Medicated Child’, TV 프로그램 <프런트라인>, 보스턴, 2008년 1월.
(2) 미국의 경우 40~60분간 MRI로 뇌를 촬영하는 데 드는 비용은 1500~3천달러다.
(3) ‘Anxiety Disorder’, www.brainmattersinc.com, 2009.
(4) 이상운동증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안면의 움직임이 특징이다. 특히 턱에 경련이 일고, 혀가 반복적으로 돌출된다.
(5) 대뇌의 전두엽백질을 잘라서 시상과의 연락을 단절시키는 수술 방법으로, 정신분열증 치료에 사용됐다. 환자 인격 붕괴 위험 등의 부작용으로 더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6) 대니얼 카알랏, <Unhinged. The Trouble with Psychiatry. A Doctor’s Revelations about a Profession in Crisis>, 프리프레스 출판사, 뉴욕, 2010.
(7) 대니얼 카알랏의 미국 공영 라디오 프로그램 <프레시에어> 인터뷰, 2010년 7월 13일.
(8) ‘When drug companies hide data’, <뉴욕타임스>, 2004년 6월 6일. 이 회사는 30억 달러를 지불하고, 팩실 등 자사 생산 의약품과 관련한 재판을 중단시켰다. ‘Glaxo settles cases with US for 3 billion dollars’, <뉴욕타임스> 2011년 11월 3일자 참조.
(9) 로버트 휘터커, <Anatomy of an Epdemic Magic Bullets, Psychiatric Drugs, and the Astonishing Rise of Mental Illness in America>, 크라운 출판사, 뉴욕, pp.304~307, 2010.
(10) <뉴욕타임스>, 2008년 11월 22일.
(11) 로버트 휘터커, 위의 책.
(12) 휘터커 인용 연구. WHO에 따른 건강상태에는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이 포함된다.
(13) 메디케어 및 메디케이드 센터, www.cms.gov.
50년 전 등장한 신경이완제는 의학적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은데도 미국 정신의학계에서 널리 애용되고 있다. <DSM>가 임상의 사이에 절대적인 진단 지침서로 각광받으며 전세계적으로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확한 인식을 퍼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시에 설립된 의료영상기업 ‘세어스캔’(CereScan)은 뇌영상으로 정신질환을 진단하는 업체이다. 뇌영상을 통해 정신장애를 어떻게 진단하는지 <미국공영방송>(PBS)(1)이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자세히 소개했다. 11살짜리 남자아이가 엄마·아빠 사이에 앉아 얌전히 자기공명영상(MRI)(2) 뇌 촬영 결과를 기다린다. 한 여성 임상사회복지사가 소년에게 떨리는지 묻는다. “아니요.” 소년이 대답한다. 대답을 들은 복지사가 가족에게 뇌영상을 꺼내놓는다. “자, 보세요. 여기는 빨간색, 여기는 주황색인 게 보이죠. 원래는 초록색, 파란색을 띠어야 정상이랍니다.” 요컨대 색에 따라 어느 것은 우울증, 어느 것은 양극성장애(조울증) 또는 불안과 관련한 각종 정신장애를 뜻한다는 설명이다.
정신장애 진단 왜 폭증하나 했더니
오늘날 미국 사회는 이상 증상에 점차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세어스캔도 이런 사회적 요구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 업체에 따르면, 18~54살 미국인 가운데 ‘불안장애와 관련한 병리적 이상 및 장애’로 고통받는 사람은 7명 중 1명, 다시 말해 모두 900만 명에 달한다.(3) 미래 유망 시장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세어스캔은 앞으로 미국 내에 의료영상센터 20곳을 새로 개설할 계획이다.
일반인에게 기대되는 규범 행동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된 바는 없다. 그럼에도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은 ‘주의력결핍’ 등 병리학적 장애나 이상 증상에 대한 진단 기준을 자세히 나열·분류해놓고 있다. <DSM>은 미국 임상의들 사이에 절대적 진단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른 나라의 활용 사례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그 결과 <DSM>에 따라 ‘병리적 이상’을 진단받는 아이들의 연령대가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아래 기사 참조). 한 예로 미국에서는 2000년대 초 이후 양극성장애 진단을 받은 어린이가 100만 명에 이르렀다. 1992년 1만6천 명에 불과하던 6~22살 자폐 환자도 2008년 29만3천 명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2000년부터 집계에 들어간 3~6살 어린이 환자까지 모두 합하면 이 수치는 무려 33만8천 명에 이를 것이다.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중증 정신장애를 이유로 연방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수혜자도 매일 1100명(성인 850명, 어린이 250명)씩 늘어났다. 정신장애자를 걸러내는 사회적 그물망이 점차 촘촘해지는 셈이다. 문제는 성인 임상시험 결과, 약물치료가 장기적으로 반드시 분명한 효능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초기 몇 주간은 긍정적 치료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일반적으로 위약을 복용한 경우에도 초기에는 긍정적 반응이 나타난다). 하지만 좀더 장기적 차원에서는 복구하기 힘든 뇌손상이나 후천적 이상운동증(Dyskinesia)(4) 등을 일으킨다.
본격적으로 정신이상에 대한 약물치료가 시작된 것은 1950년대부터다. 프랑스 의사 앙리 라보리의 연구를 토대로 말라리아·결핵·수면병에 약물요법을 시행한 것이 단초가 됐다. 라보리 박사는 프로메타진 투여가 ‘행복감을 동반한 편안한 정신상태’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51년, 그는 이런 상태를 ‘약에 의한 전두엽백질절제술’(Medicinal Lobotomy)에 비유했다. 1949년 노벨 의학·생리학상을 받은 포르투갈 신경학자 에가스 모니스가 창안한 ‘전두엽백질절제술’(Lobotomy)(5)에 빗대어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전두엽백질절제술에 이어, 최초의 신경이완제(훗날 ‘소라진’(Thorazine)으로 불림) 역시 순식간에 여러 정신병원으로 확산됐다. 심지어 대서양 너머로까지 널리 전파됐다. 이를 기점으로 정신질환이 뇌의 화학적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인식이 서서히 싹텄다. 언론매체도 대중을 상대로 리튬이나 ‘프로작’(Prozac)(1988년 시판), ‘졸로프트’(Zoloft), ‘자이프렉사’(Zyprexa) 등 여러 의약품이 지닌 ‘기적’ 효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신경이완제가 등장하면서 정신과 전문의에 이어 의무실 직원, 임상사회복지사까지 전에 없던 폭넓은 약처방권을 누리게 됐다. 반면 심리치료나 운동, 영양 개선, 사회성 향상 등 다른 치료법은 등한시됐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약물치료가 더욱 증가했다. <DSM>이 진단 기준으로 활용되면서 정신질환의 종류도 한층 세분화되고 늘어났다. 의료 당국의 축복 속에 약물치료가 급증했다.
화학적 치료 올인, 사회적 치료 외면
제약사가 우발적 정신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단지 이것뿐이었다. “당뇨병 환자에게 인슐린이 필요하듯, 여러분에게도 약이 필요하다.” 지난 몇 년간 제약업계의 충직한 홍보원 노릇을 하며 두둑이 배를 채워온 대니얼 카알랏 박사가 제약산업의 영향력을 비난했다.(6) “우리는 내방자에게 본인의 뇌가 화학적으로 불균형한 상태라고 설명한다. 환자 자신이 진짜 아프다고 믿게 만들려면 의학적으로 신빙성 있는 설명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설명이 진실인지는 아직 확실히 증명된 바가 없다.”(7)
여러 추적연구(제약회사가 실시한 연구는 아니다)에 따르면, 신경이완제의 효과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약화된다. 대개는 좀더 강도 높은 발작이 다시 찾아온다. 심지어 위약치료군보다 훨씬 더 심하게 병세가 악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임상의는 투약량이 너무 적거나 치료법이 적절치 않았나 보다며 오히려 투약량을 늘리거나 치료 강도를 높일 뿐이다. 결국 병세는 더욱 악화되고 장애도 한층 깊어진다. 오늘날 미국에서 이런 악순환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이 수백만 명에 달한다. 1951년 라보리 박사가 ‘약에 의한 전두엽백질절제술’이라고 표현했듯이, 때로는 진짜 ‘전두엽백질절제술’과 유사한 악순환이 빚어진다.
아프다고 믿게 만들라
이런 불편한 진실 앞에 제약회사와 연구원들은 종종 임상실험 과정과 결과를 은폐하거나, 심지어 일부 내용을 삭제해 왜곡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한 예로 미국 텍사스대학 연구팀은 그런 식으로 청소년 의약품 ‘팍실’(Paxil)의 임상실험 결과를 위조해 발표했다. 임상실험에 참여했던 환자의 자살률을 높인다는 사실을 쏙 빼버린 것이다. 의약계는 이 약이 청소년 환자에게 내약성이 우수하다고 치켜세우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그런데 이 약을 개발한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이 과거 한 내부 문건에서 이 약이 위약보다 더 효능이 뛰어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했음이 밝혀졌다. 결국 업체는 허위광고 혐의로 법원에 제소됐다. 하지만 업체는 재판 대신 손해배상 쪽을 택했다. 재판으로 이미지가 실추돼 판매수익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판단이었다.(8) 이는 제약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행이다. 이 점에서 제약업계는 담배산업과도 많이 닮아 있다.
일부 학자들은 신경이완제가 거의 효능이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심지어 이를 복용한 환자의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하지만 그들의 의견은 묵살됐다.(9) 제약업계의 재정적 지원에 대대적으로 의존하는 각 대학의 정신의학과는 일반적으로 심각한 이익갈등에 노출돼 있다. 감히 의약품이나 제약사의 이미지를 실추하는 발언을 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2000~2007년 미국 에모리대학 의학대학원 정신의학과 학과장은 수백여 차례에 걸쳐 의약품 홍보 성격의 강연에 참가한 대가로 여러 제약사로부터 280만 달러 이상의 자문료를 받아 챙겼다(더욱이 제대로 소득신고도 하지 않았다). 미국 국립정신보건연구소(NIMH)의 전 소장도 2000~2008년 ‘기분안정제’(Mood Stabilizer·양극성 장애를 조절하기 위한 약으로, 신경안정제와는 다르다)를 홍보해준 대가로 글락소스미스클라인에서 130만 달러를 받았다. 특히 그는 당시 <공영라디오방송>(NPR)의 한 인기 프로그램 진행자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관행에 대해 질문을 받은 그는 <뉴욕타임스>에 “(이 바닥에서는) 누구나 다 그렇게 한다”고 대답했다.(10)
효과 적거나 되레 부작용 일으켜
제약회사에 이어 약처방권을 지닌 수많은 의료계 종사자까지 가세해 향정신성 의약품과 그 밖의 신경이완제 같은 약품의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좀더 다양한 의약품을 더 많이 장기간 복용하도록 부채질하는 것이다. 한 예로 ‘노바티스’는 2000~200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 없이 양극성 장애와 신경성 통증 치료에 대해서도 항간질제 ‘트리렙탈’(Trileptal)을 불법으로 판촉했다가 4억2250만 달러에 달하는 벌금을 물었다. 오늘날 의료계에는 의약품 홍보를 위한 강연이 판을 친다. 제약사는 평소 홍보할 약을 많이 처방한 의사에게 두둑이 돈을 챙겨주고 강연자로 나서게 한다. 수많은 동료 의사들에게도 돈을 주어 청중석을 채우게 한다. 문제는 여기에 드는 천문학적 수준의 마케팅 비용이 최종적으로 의약품 가격에 반영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전부 환자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의사들의 공모, 약에 저는 두뇌
그렇다면 대체 정상과 질병의 경계는 어떻게 그어지는 것일까? 사실 정신질환의 범주를 결정하는 과정에는 현 의료 시스템의 병폐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오늘날 의료 시스템은 온갖 종류의 ‘장애’를 만들어내며, 환자들이 의약품을 과다하게 소비하거나, 의사들이 과잉 진료를 하도록 부채질한다. 게다가 환자가 자기에게 적합한 치료를 받기 더 힘들게 하고 -특히 ‘행위별 수가제’(FFS·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마다 그 횟수에 따라 진료비를 지급하는 제도)가 운용되는 경우 어떻게든 ‘진료 건수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므로- 쓸데없는 진단 검사나 무분별한 약 처방을 부추긴다. 그런데 오늘날 오랜 추적연구의 결과가 하나둘 쌓이면서, 정신분열을 포함한 정신질환을 약물로 다스리는 것이 다른 치료법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물론 드물기는 하나, 일부 예외적인 경우 단기간 약물치료가 더 효과적인 경우는 있다).(11) 결국 약물치료보다는 운동·대인관계·일 등이 정신적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더 편안히 해준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거나, 가족 혹은 공동체에서 따돌림을 받을 때 더 자주 발생한다. 1970~90년대 세계보건기구(WHO)가 전세계의 각 문화를 대상으로 정신분열증과 우울증에 대해 연구한 결과만 봐도, 약물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가 중·장기적으로는 전반적으로 건강상태가 더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12)
그런데도 오늘날 신경이완제가 제약사의 매출을 올려주거나 배를 불리는 데 널리 활용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의약 부문은 지난 50년간 수익성 높은 산업 중 하나였다. 법률체계도 제약산업에 한없이 관대하다. 의료개혁안을 둘러싼 논의가 한참 진행되던 2009년, 보험사·제약사·의료서비스업계 등은 자신의 이권 수호를 위해 법률 입안자들에게 무려 5억4400만 달러에 달하는 로비자금을 쏟아부었다. 2009년 미국의 정신보건 부문 의료예산은 1700억 달러로, 최대 의료예산 항목을 차지하고 있다. 2015년에는 무려 2800억 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13) 아이러니한 사실은, 정신장애 약물치료가 급증하는 현 상황이 무색하게도, 수십만 명에 달하는 환자들이 여전히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전체 인구의 16%에 달하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시민(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개혁은 2014년에나 실행될 예정이다)과 교정기관에 갇힌 수많은 수감자가 대표적인 예다. 감금 생활과 투옥 환경이 환자의 병세를 더 악화시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수감자는 무려 5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교정기관은 이런 문제에 수수방관할 뿐이다. 그 결과 수감자들은 자유의 몸이 되고 나면 치료를 이유로 다시 약물에 손을 대거나, 심지어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만다.
글 / 올리비에 아펙스 Olivier Appaix 경제학자
의료 및 후진국 개발 전문 경제학자.
번역 / 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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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 Medicated Child’, TV 프로그램 <프런트라인>, 보스턴, 2008년 1월.
(2) 미국의 경우 40~60분간 MRI로 뇌를 촬영하는 데 드는 비용은 1500~3천달러다.
(3) ‘Anxiety Disorder’, www.brainmattersinc.com, 2009.
(4) 이상운동증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안면의 움직임이 특징이다. 특히 턱에 경련이 일고, 혀가 반복적으로 돌출된다.
(5) 대뇌의 전두엽백질을 잘라서 시상과의 연락을 단절시키는 수술 방법으로, 정신분열증 치료에 사용됐다. 환자 인격 붕괴 위험 등의 부작용으로 더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6) 대니얼 카알랏, <Unhinged. The Trouble with Psychiatry. A Doctor’s Revelations about a Profession in Crisis>, 프리프레스 출판사, 뉴욕, 2010.
(7) 대니얼 카알랏의 미국 공영 라디오 프로그램 <프레시에어> 인터뷰, 2010년 7월 13일.
(8) ‘When drug companies hide data’, <뉴욕타임스>, 2004년 6월 6일. 이 회사는 30억 달러를 지불하고, 팩실 등 자사 생산 의약품과 관련한 재판을 중단시켰다. ‘Glaxo settles cases with US for 3 billion dollars’, <뉴욕타임스> 2011년 11월 3일자 참조.
(9) 로버트 휘터커, <Anatomy of an Epdemic Magic Bullets, Psychiatric Drugs, and the Astonishing Rise of Mental Illness in America>, 크라운 출판사, 뉴욕, pp.304~307, 2010.
(10) <뉴욕타임스>, 2008년 11월 22일.
(11) 로버트 휘터커, 위의 책.
(12) 휘터커 인용 연구. WHO에 따른 건강상태에는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이 포함된다.
(13) 메디케어 및 메디케이드 센터, www.cms.g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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