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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속의 티베트인들의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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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금선스님 댓글 0건 조회 2,888회 작성일 12-02-2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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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히말라야 다람살라에서 고국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는 티베트 승려들. 사진 <한겨레> 자료



“남로 싸르체라 따시델레 슈!” (새해를 맞아 축복의 인사를 드립니다.)


티벳 사람들이 새해 아침에 만나는 사람마다에 전하는 인사말이다. 그러나 올 임진년 티벳 설날(2.22)은 너무 쓸쓸했다. 원래 설날만큼은 기쁨과 함께 누구나 즐기는 티벳 최고의 명절인데도 말이다. 우선 지난 한 해에 중국에 강제 병합된 티벳 전 지역에서의 인권과 종교 자유를 원하는 분신(焚身)사건이 스물 한건이나 일어났다. 이에 이곳에서도 그분들을 기리는 새해를 맞기로 하여 어떤 놀이나 가무를 자제하도록 망명 정부자체에서 호소했다. 덕분에 명절 분위기가 아닌 장례식 분위기라고나 할까.


  초하루 설날 아침엔 기대와 설렘으로 달라이 라마가 거주하는 남걀 사원에 다 모여 기쁨으로 존자님의 새해 첫날 덕담을 귀담아 듣는 게 상식적인 첫날 아침이건만  올핸 아니었다. 어쩌면 좀 우울한 새해 시작의 첫날이 되어버린 것이다. 존자님이 나왔지만 그런 연례적인 환희에 찬 덕담은 일절 없이 그냥 신년 불교 예식만 어떤 말씀 없이 진행 되었을 뿐이다.


  씁쓸한 티벳 설날 아침에 덩달아 내 마음도 무거워지며 과연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자기표현을 한 스님들에게 그런 무섭기도 하고 용감한 결단이 어디서 나올까 생각이 깊어진다. 흔히들 이 세상 많은 어떤 종교에서나 자기 종교를 위한 순교를 영웅시하거나 성인화하고 있다. 이곳 달라이 라마께서는 그런 극단의 행동을 삼가 할 것을 몇 차례나 선언하기도 했다.

 

  1963년 월남전이 더욱 거칠어질 때, 전쟁 반대를 주장하며 종전(終戰)을 위한 한 비구스님의 분신이 있었다.  필자는 그때 철없는 초등학교 시절이었지만 시간이 얼추 지난 뒤, 어디선가 구하여진 잡지 기사 흑백사진을 본 순간의 전율이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사람이 몸뚱아리에 불이 활활 타고 있지만 가만히 앉아 있는 정좌(精座)의 그 사진을!


  이후 철이 들어가면서 종교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철학에 깊이 심취해 가면서 인생 자체에 깊은 고뇌로 이어져갔다. 그러다가 출가를 하게 되었고  출가 이후에도 늘 사람 몸 가진 자로써의 극한의 행동을 보면서 “난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지!” 하며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지금 계속 이어지는 티벳 본토에서의 분신, 힘없는 자로써의 마지막 자기표현이며 인간의 마지막 절규이리라. 그러나 중국 정부는 매번 국가를 분열하려는 반동들의 자살행위로만 보도하며 그 책임을 절과 친인척에 부과하고 있다. 또한 이 모든 책임을 이곳 달라이 라마의 사주로 돌리며 중화민국 최대의 적 1호로함은 물론 달라이 라마를 “위대한 조국 중국을 분열시키는 제국주의자들의 가장 나쁜 앞잡이 인 부도덕한 사람”으로 매스컴을 도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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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수도 라싸 데풍사원에서 매년 설날 종교의식에 참여하는 티베트인들.


지금 그 쪽 티벳 사람들의 인권이나 종교 문화의 자유가 얼마나 무자비하게 통제되는 지역인가는 상상을 초월 한다. 그런 탄압이 강해질수록 아이러니칼하게도 티벳 본토의 승려나 신도들은 이곳 망명 정부의 달라이 라마에 대한 신뢰가 더욱 커지고 높아져간다는 것이다. 이번 새해 설은 본토나 이곳이나 분신으로 죽은 이들을 위한 추모를 뜻하는 의미로 조촐한 설 명절을 보내기로 했고 또 실제 그랬다.

 

 그런데 본토에서는 중국정부 공안들이 어떤 정책으로 강압적인 지시와 술수의 억지잔치를 벌렸는가.  오히려 어느 때 보다도 성대한 설을 지내도록 돈을 뿌려가며 강제적인 설 잔치를 만들었고, 만약 그 잔치나 가무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협박의 경고를 준 것이다. 돈으로 신앙을 매수하려는 이 얼마나 유치하며 우스운 발상인가. 어떻게든지 이곳 망명정부와는 이질적인 행동을 조정하는 것이 바로 실제 그들의 이간질인 것이다.
 
  지금 이곳 망명정부 산하 각 절에서는 소신공양으로 죽음까지 선택한 이들을 위한 추모기도 법회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참으로 필자에게 위로를 주는 한 소식은 한국 불교 조계종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중국 정부에 티벳에서 자행되는 종교자유 인권 보장에 따른 탄압중지를 선언하며 항의성명과 함께 우리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남의 고통이 또 이웃의 불의가 바로 우리의 것임을 천명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자는 뜻이다.  또한 티벳 본토의 비극적인 사건이 터질 때마다에 이곳 달라이 라마는 어떤 심정일까 하는 생각이 꼭 일어난다. 한번은 뜬금없이 필자에게 혹시 친인척 중 누가 이북 땅에 남아있는가를 물으셨는데, 세월감에 그 질문의 무게를 느껴간다. 

 

당신의 조언대로 끝까지 붓다의 가르침을 따른 비폭력 무저항 정신 그대로를 지켜나가야만 한단 말인가.  하긴 이 땅 인도에서도 영국 통치하에서의 45킬로도 안 되는 가냘픈 몸, 165 쎈티미터의 단신, 삐쩍 마른 간디 할부지의 비폭력 무저항 운동으로 끝내 승리를 얻어낸 숭고한 독립이었다.


  필자 주위의 대부분 티벳 난민들은 이산가족이다. 부모나 친척 누군가는 티벳 본토에 남아 있다.  만날 때마다에 혹시 그쪽 사정 안부를 물으면 전화 통제까지 당하는 지역이라 어떤 사실을 알기 어렵고, 아예 그쪽 친인척에 불이익을 당할까 봐 연락을 자제한다고 한다. 지난번 칼라차크라 법회 행사에 나온 티벳 캄쪽 사천성 출신 한 젊은 스님의 하소연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마음이야 달라이 라마가 있는 인도 땅에 남고 싶지만, 그러면 사사건건 시도 때도 없이 고향에 남아있는 가정 식구들에게 당할 은밀한 감시와 불이익 때문에 꼭 돌아가야만 한다며 말 할 때의 글썽거리는 눈매가 선하다.

 

  티벳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자 게나 창 댄,
              미 게나 율 댄.“

  우리말로 풀어 쓰면 이렇다. 즉,

            “새가 늙으면 둥지를 그리워하고,
            사람이 늙으면 고향을 그리워한다.“

 

  같은 사람으로서 고향 떠난 티벳 난민들에게 난민생활 53년을 참아오고 기다리는 그들을 연민하며, 필자도 그들의 마음 고통을 인연이 닿는 한 이 자리에서 함께 하고자 한다. 흔히들 비 올 때 우산 없이 걸어가는 사람에게 우산 하나 사 주는 걸로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아는데, 필자의 견해는 나도 함께 우산 없이 비 맞으며 간다는 것이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라는 삶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올 티벳 설날은 이렇게 어설펐지만 내년에는 전통대로 흥이 있고 기쁨이 넘치는 아름다운 첫날 새해가 되기를 기원하면서....

 

   2012년 티벳 정초에, 비구  청 전 두 손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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