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식된 영혼, ‘복지’라는 치유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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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금선스님 댓글 0건 조회 2,920회 작성일 11-12-31 08:47본문
▲ <어머니들>, 1921-케테 콜비츠
무상급식으로 시작된 복지 요구는 최근 ‘반값 등록금’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국가 복지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한국 현대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더욱이 2012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복지의 정치적 의제화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불안, 복지를 불러세우다
복지를 매개로 한 큰 변화로는, 첫째 선거 과정에서 중요한 정책 경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 둘째 진보 진영뿐 아니라 보수 및 자유주의 진영까지도 복지 확대를 거부할 수 없다는 점, 셋째 복지를 전제로 한 동맹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몇 해 전만 해도 복지는 일부 가난하거나 신체적 장애 등으로 스스로 생활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만 국가가 시혜적 차원에서 생활의 일부를 지원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시혜’가 아닌 시민의 ‘권리’로 인식이 발전하면서 중산층의 중요한 관심 영역이 되었다. 이런 인식 변화의 근저에는 불안이 존재한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 풍요와 도시의 화려함과는 대조적으로 대다수 한국 사회의 구성원은 소득 감소, 실업, 양육 및 교육, 질병 등 사회문제와 생애 위험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 사회문제와 생애 위험은 2011년만의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체제는 상위 일부 계층을 제외한 전체 계층에게 직접적인 위험 요소로 닥쳐왔다. 즉 개인 및 가계의 실질소득 감소, 고용 불안정성 증가, 청년 및 장년 실업의 장기화, 수명 연장 등은 중산층의 상대적으로 ‘안정된’ 삶을 박탈하면서 불안을 증폭해왔다.
소득 감소, 양극화와 비정규직 증가는 사람들의 삶이 모든 위험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노동과 자본의 심각한 권력 불균형으로 국가의 친자본적 성격이 강화됐고, 그 결과 노동권은 약화되고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하게 됐다. 이런 거시적 변화는 일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면서 부당한 고용관계, 노동시간을 포함한 노동환경의 후퇴, 실질소득 하락 등으로 발현됐다.
더욱이 자본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형태를 대노동 전략으로 활용하면서 일터에서의 주도권을 획득하고 휘둘러왔다. 개인은 ‘가족을 위해’라는 거부할 수 없는 대전제 아래 부당함에 거부하거나 투쟁하기보다는 수용하고 순응해왔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봐도 아무것도 기약할 수 없는 내일에 대한 불안과 자식들의 등록금조차 해결할 수 없는 오늘의 분노가 ‘복지’라는 요구로 담기기 시작했다. 그러기에 부르주아 정치권과 시민사회 진영은 그 어느 때보다 복지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보편복지와 선별복지 대립의 이면
복지 담론 확대의 일등 공신은 단연코 ‘보편복지’다. 보편복지는 이제 대중화돼 일간지에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한다. 그리고 선별복지는 보편복지와 대립되는 양상으로 구조화됐다. 보편복지는 진보의 가치로, 선별복지는 보수 혹은 자유의 가치로 대비됐고, 더욱이 민주당이 당론으로 보편복지를 수용하고 일부 한나라당 의원조차 보편복지 가치를 시대정신으로 인정했다. 불과 2~3년 전 진보정당만이 주장해왔던 무상복지가 부르주아 정당 내부로 흡수되면서 외형적으로는 복지를 매개로 정치적 동맹의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이런 가능성의 진위를 식별하기 위해 보편과 선별의 대립 구조 이면을 살펴야 한다.
이론상 보편과 선별은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보다는 ‘누구에게 줄 것인가’라는 할당(Allocation)의 문제다. 보편주의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 모순에 주목하지 않으면서 최대한의 복지 확대를 지향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사회권(Social Rights)을 부여한다. 반면 선별에서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복지 확대의 한계를 인정하기 때문에 자원 배분 기준을 제시한다. 이에 개인의 욕구(Need)가 할당 기준이 되고, 이는 자산 및 소득 조사를 통해 심사된다. 또한 선별에서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간계급에게 복지급여가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차이 때문에 예방적 성격을 가진 사회정책에는 보편적 기준을, 빈곤 해소 같은 불평등 제고를 위해서는 선별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보편주의와 선별은 서로 대립하기보다는 보완되는 측면이 많고, 복지국가는 잠정적으로 보편주의를 지향한다. 보편주의와 선별의 이분법은 수급 자격에 관한 개념 확립에 유용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이분법적 적용보다 훨씬 복잡한 게 현실이다.(1)
이제까지 한국 복지는 낮은 수준의 예방적 기능과 엄격한 수급자 선정으로 잔여적 성격이 짙었다. 즉, 선별 자체의 문제보다는 제도적 복지가 아닌 잔여적 복지를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수혜자를 제한해왔다. 이에 보편주의 원리가 적용된 사회보험의 낮은 보장성과 포괄성, 그리고 선별성에 입각한 공공부조의 엄격성 모두가 한국식 ‘선별주의’로 비판됐다. 그러나 선별의 원리가 욕구와 위험이 높은 집단을 구분하고 지원할 수 있는 현실적으로 필요한 수단이라는 점이 간과되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 체제 이후 지속적으로 지적된 사회보험 사각지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비현실성, 두 제도 모두에서 보호되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가 ‘보편복지’라는 틀거지로 수렴됐다. 그러나 보편과 선별의 적용 영역은 담론의 통일처럼 간단하지 않다. 진보정당과 민주당의 보편복지는 무상 시리즈(급식·보육·의료+α)로 비슷해졌고, 이대로라면 적어도 복지 의제에서는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렵게 됐다. 이를 두고 민주당의 급진화로 평가하지만, 엄밀히 보면 중산층을 포섭하려는 적극적인 구애로 이해할 수 있다. 중산층은 낙수효과의 무용성을 체감했고, 가계 소득과 지출 간의 차이를 시장을 통해 해소하지 못한 채 사회적 안전망에서도 배제돼왔다.(2) 민주당은 이런 중산층의 불만과 욕구를 포착했고, 이것이 진보정당의 기존 보편복지 제안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1년간 복지 담론의 장에서 무상 및 보편복지를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면서 중산층의 불만과 욕구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못함으로써 ‘보수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맞춤형’, ‘서민형’, ‘한국형’ 같은 보수 진영 복지레짐의 공통점은 노동 및 개인 책임 강화라는 신자유주의 원칙하에 욕구를 심사하고 판정하는 것을 제도의 중심에 놓는다는 것이다. 즉, 선별에 입각하되 이전보다 대상자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복지 확대를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증세와 복지 팽창을 반대하는 중산층에게 동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차 시장소득의 불안정성이 높아진 현실에 비춰볼 때, 한나라당도 복지 욕구가 증가된 중산층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다는 것 역시 현실이다.
부르주아 정치의 복지 너머
복지국가보다 1세기 늦었지만, 한국 사회에서도 복지는 이제 진보 진영만의 의제가 아닌 부르주아 정치의 의제가 되었다. 독일의 사회정책학자인 카우프만(3)은 19세기 후반 유럽의 사회정책 출현을 4가지 관점에서 분석한다.
첫째, 자유주의는 사회적 위험을 시장 스스로 치유 능력과 잠재적 자조 능력을 강화해 극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사회정책에 부정적이다. 이런 관점은 대공황 이후 후퇴했지만 신자유주의 이후 재조명됐다. MB는 이런 관점에서 여전히 시장에 맹목적이지만,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정책을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보수주의는 수구 지배세력의 이해를 중심으로 신분사회의 전통적 풍속을 고려해서, 가족이나 친족의 연대적 관계 복원 수준에서 사회정책을 요구했다. 보수주의는 이후에도 그들의 신분 유지를 위해 체제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복지제도에 적극적이었고, 이에 가장 대표적인 정책 대상이 가족복지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나라당 내 보수 계열의 복지 비전 제시는 놀라운 일이기보다는 뒤늦은 역할 채우기로 볼 수 있다.
셋째, 개혁주의는 자본주의의 체제 문제에 대해 인식하지만, 제도적 개혁을 통해 정치적·사회적 체계가 오랫동안 안정되길 희망한다. 이에 의회 정치를 통한 개혁을 중요한 과제로 여겼으며, 그 전통을 사민주의 정당에서 유지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복지 담론에 참여하고 있는 논자나 정치인들은 공식적으로 사민주의를 표방하지는 않지만 복지를 통한 개혁 달성이 목표라는 점에서 유사점을 읽을 수 있다.
넷째, 혁명주의는 사회주의 세력을 대변하는 입장으로, 자본주의 고유의 모순에 기인한 문제는 체제 극복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사회정책을 통한 노동 및 사회문제 해소는 지배계급의 체제 유지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게 당연하다. 반면 피지배계급의 투쟁을 통한 개혁은 혁명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고 파악한다.
일하는 사람의 복지가 필요하다
이 네 가지 관점과 태도를 통해 자본주의사회 내에서 복지에 대한 다양한 목적과 지향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폐해는 빈곤층뿐만 아니라 중산층의 생활까지 위협하는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이에 보편주의는 모두를 포괄하면서 모두의 권리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우월한 할당 원칙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 모두의 시민권에 기반한 동등한 권리로서의 평등이 과연 선거와 정권 교체만으로 달성될 수 있을까? 또한 노동계급 내부의 분화, 고용 및 고용형태의 불안정성, 소득 양극화, 빈곤 심화, 청년실업 심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나쁜 일자리 확대와 같은 다층적이고 다각적인 문제를 어떻게 보편복지의 틀거지로 묶어낼 수 있을까? 계급 내부의 다층적 분화 및 소득 격차 문제는 그대로 둔 채 할당의 보편성만 부각된다면, 결국 문제의 원인인 분화된 노동정책 같은 구조적 문제는 주변화될 수밖에 없다.
유성, 한진, 국민체육진흥공단, 홍익대 청소분회 등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일터 곳곳에서 노동권 침해와 고용문제가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다. 국가는 최소한의 합리적인 해결 방식을 거부한 채 노동을 억압하고 있다. 일하는 사람에 대한 20세기 수준의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부르주아 정당의 정책 대결과 선거를 통해 평등이 달성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일하는 사람을 위한 복지의 범주를 정확하게 규정하고, 실행을 위한 대중의 대상화가 아니라 주체화가 필요하다.
신자유주의 이후 대중은 불의보다는 불이익에 분노해왔다. 이런 대중 정서에 수렴하는 복지정치는 포퓰리즘적 요소를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불안의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대중은 불의에도 분노할 것이다. 그렇게 대중의 분노가 정치가 되는, 대중이 주체가 되는 복지정치가 현재의 복지 담론에는 빠져 있다. 진보의 차별화된 복지정치는 대중의 대상화가 아닌 대중의 주체화에서 시작되고, 거기로부터 복지 전략도 구별될 것이다.
글·제갈현숙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외래교수.
<각주>
(1) N. Gilbert and P. Terrell, <Dimension of social Welfare Policy>, Allyn and Bacon, 1998.
(2) 국민연금제도가 아직 성숙기에 접어들지 못한 시점에서 중산층을 위한 가장 대표적인 복지는 조세정책이라 할 수 있다. 연말정산을 통해 대다수 중산층은 세금 감면을 지원받고 있지만 이것을 복지로 인식하지 않는다.
(3) Franz-Xaver Kaufmann, <Sozialpolitisches Denken: Die deutsche Tradition>, Frankfurt a. M.: Suhrkamp, 2003.
무상급식으로 시작된 복지 요구는 최근 ‘반값 등록금’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국가 복지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한국 현대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더욱이 2012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복지의 정치적 의제화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불안, 복지를 불러세우다
복지를 매개로 한 큰 변화로는, 첫째 선거 과정에서 중요한 정책 경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 둘째 진보 진영뿐 아니라 보수 및 자유주의 진영까지도 복지 확대를 거부할 수 없다는 점, 셋째 복지를 전제로 한 동맹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몇 해 전만 해도 복지는 일부 가난하거나 신체적 장애 등으로 스스로 생활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만 국가가 시혜적 차원에서 생활의 일부를 지원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시혜’가 아닌 시민의 ‘권리’로 인식이 발전하면서 중산층의 중요한 관심 영역이 되었다. 이런 인식 변화의 근저에는 불안이 존재한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 풍요와 도시의 화려함과는 대조적으로 대다수 한국 사회의 구성원은 소득 감소, 실업, 양육 및 교육, 질병 등 사회문제와 생애 위험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 사회문제와 생애 위험은 2011년만의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체제는 상위 일부 계층을 제외한 전체 계층에게 직접적인 위험 요소로 닥쳐왔다. 즉 개인 및 가계의 실질소득 감소, 고용 불안정성 증가, 청년 및 장년 실업의 장기화, 수명 연장 등은 중산층의 상대적으로 ‘안정된’ 삶을 박탈하면서 불안을 증폭해왔다.
소득 감소, 양극화와 비정규직 증가는 사람들의 삶이 모든 위험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노동과 자본의 심각한 권력 불균형으로 국가의 친자본적 성격이 강화됐고, 그 결과 노동권은 약화되고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하게 됐다. 이런 거시적 변화는 일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면서 부당한 고용관계, 노동시간을 포함한 노동환경의 후퇴, 실질소득 하락 등으로 발현됐다.
더욱이 자본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형태를 대노동 전략으로 활용하면서 일터에서의 주도권을 획득하고 휘둘러왔다. 개인은 ‘가족을 위해’라는 거부할 수 없는 대전제 아래 부당함에 거부하거나 투쟁하기보다는 수용하고 순응해왔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봐도 아무것도 기약할 수 없는 내일에 대한 불안과 자식들의 등록금조차 해결할 수 없는 오늘의 분노가 ‘복지’라는 요구로 담기기 시작했다. 그러기에 부르주아 정치권과 시민사회 진영은 그 어느 때보다 복지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보편복지와 선별복지 대립의 이면
복지 담론 확대의 일등 공신은 단연코 ‘보편복지’다. 보편복지는 이제 대중화돼 일간지에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한다. 그리고 선별복지는 보편복지와 대립되는 양상으로 구조화됐다. 보편복지는 진보의 가치로, 선별복지는 보수 혹은 자유의 가치로 대비됐고, 더욱이 민주당이 당론으로 보편복지를 수용하고 일부 한나라당 의원조차 보편복지 가치를 시대정신으로 인정했다. 불과 2~3년 전 진보정당만이 주장해왔던 무상복지가 부르주아 정당 내부로 흡수되면서 외형적으로는 복지를 매개로 정치적 동맹의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이런 가능성의 진위를 식별하기 위해 보편과 선별의 대립 구조 이면을 살펴야 한다.
이론상 보편과 선별은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보다는 ‘누구에게 줄 것인가’라는 할당(Allocation)의 문제다. 보편주의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 모순에 주목하지 않으면서 최대한의 복지 확대를 지향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사회권(Social Rights)을 부여한다. 반면 선별에서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복지 확대의 한계를 인정하기 때문에 자원 배분 기준을 제시한다. 이에 개인의 욕구(Need)가 할당 기준이 되고, 이는 자산 및 소득 조사를 통해 심사된다. 또한 선별에서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간계급에게 복지급여가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차이 때문에 예방적 성격을 가진 사회정책에는 보편적 기준을, 빈곤 해소 같은 불평등 제고를 위해서는 선별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보편주의와 선별은 서로 대립하기보다는 보완되는 측면이 많고, 복지국가는 잠정적으로 보편주의를 지향한다. 보편주의와 선별의 이분법은 수급 자격에 관한 개념 확립에 유용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이분법적 적용보다 훨씬 복잡한 게 현실이다.(1)
이제까지 한국 복지는 낮은 수준의 예방적 기능과 엄격한 수급자 선정으로 잔여적 성격이 짙었다. 즉, 선별 자체의 문제보다는 제도적 복지가 아닌 잔여적 복지를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수혜자를 제한해왔다. 이에 보편주의 원리가 적용된 사회보험의 낮은 보장성과 포괄성, 그리고 선별성에 입각한 공공부조의 엄격성 모두가 한국식 ‘선별주의’로 비판됐다. 그러나 선별의 원리가 욕구와 위험이 높은 집단을 구분하고 지원할 수 있는 현실적으로 필요한 수단이라는 점이 간과되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 체제 이후 지속적으로 지적된 사회보험 사각지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비현실성, 두 제도 모두에서 보호되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가 ‘보편복지’라는 틀거지로 수렴됐다. 그러나 보편과 선별의 적용 영역은 담론의 통일처럼 간단하지 않다. 진보정당과 민주당의 보편복지는 무상 시리즈(급식·보육·의료+α)로 비슷해졌고, 이대로라면 적어도 복지 의제에서는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렵게 됐다. 이를 두고 민주당의 급진화로 평가하지만, 엄밀히 보면 중산층을 포섭하려는 적극적인 구애로 이해할 수 있다. 중산층은 낙수효과의 무용성을 체감했고, 가계 소득과 지출 간의 차이를 시장을 통해 해소하지 못한 채 사회적 안전망에서도 배제돼왔다.(2) 민주당은 이런 중산층의 불만과 욕구를 포착했고, 이것이 진보정당의 기존 보편복지 제안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1년간 복지 담론의 장에서 무상 및 보편복지를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면서 중산층의 불만과 욕구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못함으로써 ‘보수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맞춤형’, ‘서민형’, ‘한국형’ 같은 보수 진영 복지레짐의 공통점은 노동 및 개인 책임 강화라는 신자유주의 원칙하에 욕구를 심사하고 판정하는 것을 제도의 중심에 놓는다는 것이다. 즉, 선별에 입각하되 이전보다 대상자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복지 확대를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증세와 복지 팽창을 반대하는 중산층에게 동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차 시장소득의 불안정성이 높아진 현실에 비춰볼 때, 한나라당도 복지 욕구가 증가된 중산층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다는 것 역시 현실이다.
부르주아 정치의 복지 너머
복지국가보다 1세기 늦었지만, 한국 사회에서도 복지는 이제 진보 진영만의 의제가 아닌 부르주아 정치의 의제가 되었다. 독일의 사회정책학자인 카우프만(3)은 19세기 후반 유럽의 사회정책 출현을 4가지 관점에서 분석한다.
첫째, 자유주의는 사회적 위험을 시장 스스로 치유 능력과 잠재적 자조 능력을 강화해 극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사회정책에 부정적이다. 이런 관점은 대공황 이후 후퇴했지만 신자유주의 이후 재조명됐다. MB는 이런 관점에서 여전히 시장에 맹목적이지만,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정책을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보수주의는 수구 지배세력의 이해를 중심으로 신분사회의 전통적 풍속을 고려해서, 가족이나 친족의 연대적 관계 복원 수준에서 사회정책을 요구했다. 보수주의는 이후에도 그들의 신분 유지를 위해 체제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복지제도에 적극적이었고, 이에 가장 대표적인 정책 대상이 가족복지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나라당 내 보수 계열의 복지 비전 제시는 놀라운 일이기보다는 뒤늦은 역할 채우기로 볼 수 있다.
셋째, 개혁주의는 자본주의의 체제 문제에 대해 인식하지만, 제도적 개혁을 통해 정치적·사회적 체계가 오랫동안 안정되길 희망한다. 이에 의회 정치를 통한 개혁을 중요한 과제로 여겼으며, 그 전통을 사민주의 정당에서 유지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복지 담론에 참여하고 있는 논자나 정치인들은 공식적으로 사민주의를 표방하지는 않지만 복지를 통한 개혁 달성이 목표라는 점에서 유사점을 읽을 수 있다.
넷째, 혁명주의는 사회주의 세력을 대변하는 입장으로, 자본주의 고유의 모순에 기인한 문제는 체제 극복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사회정책을 통한 노동 및 사회문제 해소는 지배계급의 체제 유지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게 당연하다. 반면 피지배계급의 투쟁을 통한 개혁은 혁명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고 파악한다.
일하는 사람의 복지가 필요하다
이 네 가지 관점과 태도를 통해 자본주의사회 내에서 복지에 대한 다양한 목적과 지향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폐해는 빈곤층뿐만 아니라 중산층의 생활까지 위협하는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이에 보편주의는 모두를 포괄하면서 모두의 권리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우월한 할당 원칙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 모두의 시민권에 기반한 동등한 권리로서의 평등이 과연 선거와 정권 교체만으로 달성될 수 있을까? 또한 노동계급 내부의 분화, 고용 및 고용형태의 불안정성, 소득 양극화, 빈곤 심화, 청년실업 심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나쁜 일자리 확대와 같은 다층적이고 다각적인 문제를 어떻게 보편복지의 틀거지로 묶어낼 수 있을까? 계급 내부의 다층적 분화 및 소득 격차 문제는 그대로 둔 채 할당의 보편성만 부각된다면, 결국 문제의 원인인 분화된 노동정책 같은 구조적 문제는 주변화될 수밖에 없다.
유성, 한진, 국민체육진흥공단, 홍익대 청소분회 등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일터 곳곳에서 노동권 침해와 고용문제가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다. 국가는 최소한의 합리적인 해결 방식을 거부한 채 노동을 억압하고 있다. 일하는 사람에 대한 20세기 수준의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부르주아 정당의 정책 대결과 선거를 통해 평등이 달성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일하는 사람을 위한 복지의 범주를 정확하게 규정하고, 실행을 위한 대중의 대상화가 아니라 주체화가 필요하다.
신자유주의 이후 대중은 불의보다는 불이익에 분노해왔다. 이런 대중 정서에 수렴하는 복지정치는 포퓰리즘적 요소를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불안의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대중은 불의에도 분노할 것이다. 그렇게 대중의 분노가 정치가 되는, 대중이 주체가 되는 복지정치가 현재의 복지 담론에는 빠져 있다. 진보의 차별화된 복지정치는 대중의 대상화가 아닌 대중의 주체화에서 시작되고, 거기로부터 복지 전략도 구별될 것이다.
글·제갈현숙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외래교수.
<각주>
(1) N. Gilbert and P. Terrell, <Dimension of social Welfare Policy>, Allyn and Bacon, 1998.
(2) 국민연금제도가 아직 성숙기에 접어들지 못한 시점에서 중산층을 위한 가장 대표적인 복지는 조세정책이라 할 수 있다. 연말정산을 통해 대다수 중산층은 세금 감면을 지원받고 있지만 이것을 복지로 인식하지 않는다.
(3) Franz-Xaver Kaufmann, <Sozialpolitisches Denken: Die deutsche Tradition>, Frankfurt a. M.: Suhrkamp,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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